장애를 극복한 꿈의 연주, 발달장애 클라리넷
Dream with Ensemble

앙상블팀 소식

협동조합 인터뷰 - 드림위드앙상블 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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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3-01 19:46 조회2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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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이버 협동조합 Blog -> http://blog.naver.com/coop_2012/220547600967 


해가 뉘엿뉘엿 고개를 숙일 무렵, 성남의 한 지하 연습실을 방문했습니다. 
‘GO Carnegie Hall!’을 정성스럽게 적어 벽에 걸어둔 
발달장애인 클라리넷 앙상블, 드림위드 앙상블의 연습실이었습니다. 
드림위드 앙상블의 이사장님, 사무국장님 그리고 예술실장님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맡으신 역할에 따라 가지고 있는 믿음도 달랐습니다. 
오늘 인터뷰에서는 드림위드 앙상블을 이끌어나가는 
조직에 대한 자부심, 탄탄한 미래계획, 실력에 대한 확신이 느껴지실 것 같네요. 

Q. 드림위드 앙상블은 어떤 계기로 만들어졌나요? 
이사장님 : 서울에 하트하트오케스트라라는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가 있습니다. 
저희 단원들은 그 안에 있는 클라리넷 앙상블 단원들이었습니다. 
그 곳, 하트하트오케스트라에서 오랫동안 취미로 클라리넷을 연주해오다 
지금의 예술실장이신 선생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을 보면서 ‘이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연습하고 연주하는데 이것이 직업이 될 수는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저희가 독립을 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이 전문연주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직업모델입니다. 

Q. 협동조합으로 독립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많으실 것 같아요. 

이사장님 : 장애인 전문연주자들의 직업모델이 국내에서도 최초고 해외에도 사례가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보니 다른 사람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전문연주자의 길을 걷겠다는 꿈을 가진 것 뿐이라 
어떤 조직의 형태를 만들어야 하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정말 운좋게 '성남시 사회적경제 창업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창업 멘토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기업의 여러가지 조직형태, 상법상의 회사와 협동조합, 사단 또는 재단법인 등 많은 형태를 찾아봤습니다. 
그러던 중 저희는 장애인식 개선사업등의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었기 때문에 
영리단체보다는 비영리단체가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영리 사회적협동조합으로 가닥을 잡게 된 것입니다. 

Q. 음악활동이 장애인 분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나요?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1차적인 일, 단순 노동을 하게 됩니다. 
저희 단원들 역시 처음부터 전문 연주자가 되리라는 꿈을 갖고 음악을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치료의 일환으로 시작했다가 재능을 발견한 것이지요. 
나아가 재능을 이끌어줄 수 있는 선생님과 함께 하게 되면서 단원들의 연주 실력이 높아졌습니다. 
외부에서 인정을 받고 꿈을 갖게 된 것입니다. 저희 단원들 역시 단순 노동을 해본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비장애인에 비해서도 꾀부리지 않고 정말 열심히 일하지만 
사회성이 부족하다보니 소통의 문제가 발생하고 이에 따른 불이익도 있었습니다. 
노동을 해도 단순작업으로 인해 떨어지는 자존감과 충분하지 않은 보수 같은 문제도 있습니다. 
그런데 음악활동이 이런 문제점들을 보완해주는 부분이 많습니다. 
사회성도 좋아지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게 됩니다. 전문연주자로서 자존감도 생기고요. 

Q. 단원들께서도 협동조합 운영에 참여하시나요? 

이사장님 : 단원들이 물론 생산자조합원이기는 하나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의사소통이 어려워 결정권이 없습니다. 
대신 단원들의 어머니께서도 조합원으로 함께 하고 계시고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사무국장님 : 의사결정기관으로 총회, 이사회, 운영위원회를 운영합니다. 
그 밑으로 각각 역할을 맡은 팀들도 있고요. 
총회는 1년에 한 번, 이사회는 3개월에 한 번, 운영위원회는 매월 한 번 열리고 각 팀은 수시로 움직입니다. 
주로 운영위원회에서 의사결정을 하는데요, 운영위원의 다수결에 의해서 의사결정을 합니다. 

Q. 기사를 찾아보니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다른 앙상블이나 오케스트라와 다른 점이 있나요? 

예술실장님 : ‘장애’가 차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달장애인들에 대한 대중의 기대치가 굉장히 낮습니다. 
하트하트재단에서 9년간 아이들을 가르쳐 왔습니다. 처음으로 했던 정기연주회는 1년간 준비했습니다. 
첫 연주회에는 장애인들이 악기를 들고 있기만 해도 기립박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연주는 굉장히 형편 없었는데 아이들이 악기를 들고 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에 
청중들이 굉장히 감동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 당시 대학교 3학년이었던 저도 울었습니다. 
말도 안통하던 아이들이 연주를 했을 때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청중들 역시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을 보면서 이 일이 대단한 일이라는걸 알게 됐습니다. 
3회 연주회 때 까지는 사람들이 모두 감동하고 박수 쳤습니다. 그런데 3회부터는 감동이 없더라고요. 
3회차쯤 했으면 장애란 우위를 가지고 연주를 대충하면 안됐던 것입니다. 
그 때 알게 되었습니다. 
연습을 열심히 안하고 무대 위에서 박수만 받으려고 한다면 
감동을 더 이상 이끌어 낼 수 없겠구나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왜 장애인이라고 제대로 연주할 수 없나?’ 하는 생각으로 
파트 연습이라는 명목 아래 클라리넷 앙상블을 만들었습니다. 
클라리넷은 굉장히 민감한 악기라 잘 못 불면 ‘삑’소리가 납니다. 
아이들이 연주를 할 때 음정이 열 개면 그 중 다섯 개에서 ‘삑’소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기초부터 진짜로 연습해보자는 마음으로 아이들이 발작을 하거나 
보면대를 집어 던지는 등 돌발행동을 해도 끝까지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장애가 있지만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만큼만 하면 된다.’는 선을 뛰어 넘은 것이 차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Q. 세 분께서는 어떻게 단원들과 만나게 되셨나요? 

이사장님 : 저의 아이도 단원 중의 한 명입니다. 학생의 엄마로서 하트하트오케스트라에서 
앙상블을 지도하시는 선생님과 다른 엄마들의 애환을 보게 됐습니다. 
거기서 전문 연주자로서 사회적기업을 해봐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던거죠. 
선생님의 헌신, 엄마들의 애환을 모두 아는 입장이어서 가능했던 생각이었습니다. 
그 때 당시 ‘세상을 바꾸는 시간, 세바시’라는 프로그램에 베어베이터라는 회사가 나왔었습니다. 
발달장애인들만 고용해서 운영하는 곳 입니다. 그 회사의 대표가 강연을 하는걸 보고 도전의식을 느꼈습니다. 
베어베이터의 공동대표인 김정호라는 분은 발달장애인의 부모도 아닙니다. 
그런데 사회에 공헌한다는 의미로 출자하고 회사를 설립 하신거죠. 
그걸 보면서 장애가 없는 사람도 저렇게 하는구나, 
나는 내 자식이 속해있는 단체의 한계와 문제를 알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풀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우리도 한 번 해보자는 제안을 드렸던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도 수락하셨고요. 사무국장님은 금융업에 33년간 종사하시다가 2년 전에 명예퇴직을 하신 상태셨습니다. 
그 뒤에 보람 있는 일을 찾아 보시던 중에 제가 이런 발상에 대해 조언을 구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보람 있는 일인 것 같다며 함께 하시게 됐습니다. 
예술실장님 : 저의 선배가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에 계셨었습니다. 
저는 객원 맴버로 아르바이트를 왔다가 발달장애아를 처음 봤습니다. 
그 전에는 이런 장애가 있는지도, 발달장애라는 말도 몰랐습니다. 
이 친구들은 대화가 잘 안통합니다. 지금은 대학생, 성인이지만 처음 만났을 땐 고등학생, 중학생이었습니다. 
일반 학생들처럼 사춘기를 겪고 있을 때였는데 아이들은 충동적인 감정이 제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리지르고 싶으면 소리지르고 마음에 안들면 물건을 던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렇다보니 레슨이 어려워 오케스트라의 다른 선생님들은 대충 레슨 시간만 채우기도 하셨습니다. 
보통 선생님들이 레슨에서 한 번 소리 내준다면 저는 백 번이고 이백 번이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보여줬습니다. 
대화가 안되기 때문에 몸으로, 소리로, 수 많은 반복으로 체득 시켰던 것입니다. 
그 와중에 가능성을 본거죠. ‘아, 되는구나! 열 번 하면 안되는데 백 번 하면 되네?’ 
이 과정을 함께 견뎌주면 이 친구들만의 색깔이 분명히 나온다는 확신을 받았습니다. 

Q. 협동조합이 된 뒤에 주변의 반응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이사장님 : 주변의 장애아를 둔 부모님들께서도 ‘이렇게도 할 수 있겠구나!’하고 놀라워 합니다. 
다들 이런 발상을 했다는 것 자체에 놀라워하고, 저희 조직을 모티프로 삼는 움직임이 보입니다. 
앞으로 제가 볼 땐 저희와 비슷한 제2, 제3의 앙상블이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기관에서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첫 케이스라는데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사무국장님 : 문화예술 분야이기 때문에 조직을 만들고 움직이는 것을 너무 어려워하십니다. 
조직운영을 굉장히 어려워하시는데 저희 같은 경우 지도자 선생님과 이사장님, 
그리고 사무를 하는 제가 역할분담을 잘 해냈던 덕분에 짧은 시간에도 성과가 두드러졌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여기에 성남시의 창업공모사업이 가장 컸다는 생각이 듭니다. 
멘토링을 받으면서 조직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8개월을 지나면서 조직을 평가해본다면 계획에 따라 순항 중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성남시의 도움에 관해 여러 번 언급하시네요.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받으셨나요? 

사무국장님 : 저희가 사회적경제라는 부분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 상태로 이 시장에 들어왔습니다. 
때문에 이사장님과 제가 3개월간은 성남시에서 주최하는 교육을 무조건 수강하면서 사회적경제에 대해 깨우쳤습니다. 
이와 병행해서 저희 창업 팀 담임 멘토께서 드림위드 앙상블의 운영위원 열 분에게 
사회적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에 대해 세미나와 워크숍을 진행해왔습니다. 
덕분에 사회적협동조합에 대한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스케쥴에 맞춰서 법인 설립, 사회적협동조합 인허가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저 혼자 헤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진흥원과 ‘사람과 세상’, 
그리고 창업팀에서 도와주셨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저희가 사업의 방향을 잘못 잡으면 바로 말씀을 주시고 수정을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이건 이렇게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며 
많이 지도해주셨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지금까지 만들어 왔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서 순항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저희가 성남시 창업 공모사업에 선정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단체의 설립 기간이 길어졌겠죠. 
그런데 덕분에 옆길로 빠지지 않고 목적을 향해 잘 걸을 수 있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Q. 협동조합의 설립 전과 후의 차이점이 있을까요? 

이사장 : 협동조합 설립 전에는 우리끼리 좋아서 했던 동호회였습니다. 
그러나 법인이 되었기 때문에 책임성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가진 소셜 미션도 있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잘 운영해서 직원들한테 전문연주자로서 월급을 줘야 하니까 마케팅에 신경 쓰게 되기도 하고요. 
신경 써야 하는 것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사무장 : 저희가 사회적협동조합에 인가를 받을 때 취약계층 고용형으로 인가를 받았는데 
법인으로 움직여줘야 규모를 키우면서 일자리를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조직 전환이 상당히 바람직한 결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Q. 드림위드 앙상블 사회적협동조합의 장점은? 

사무국장 : 각자의 영역이 확실하게 나누어져 있는 부분을 좀 자랑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