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극복한 꿈의 연주, 발달장애 클라리넷
Dream with Ensemble

앙상블팀 소식

장애우권익연구소 월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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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3-01 19:50 조회2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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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권익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월간지인 "함께 걸음"에서 저희 드림위드앙상블과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앙상블이 걸어온 길을 관심있게 지켜봐주시고 인터뷰를 진행해 주신 채지민 객원기자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전문 음악인 클라리넷 연주자입니다
함께 걷는 우리 드림위드앙상블(Dream With Ensem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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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자인 신은 한 인간한테서 모든 걸 뺏어가지 않는다 했다. 하나 또는 두세 가지를 거두어가면, 꼭 필요한 하나는 남겨둔다는 것이다. 남겨둔 ‘그 하나’를 스스로 발견하느냐 묻어두느냐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가 된다. 다이아몬드가 최고로 비싼 귀금속이라는데, 그 다이아몬드도 가공되기 이전의 원석(原石) 안에 감춰져 있으면 아무도 그 가치를 알아낼 길이 없는 법 아닌가.

자신에게 감춰진, 보이지 않았던,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었던, 최고로 소중한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하고 최선의 노력으로 일궈낸 이들이 하나의 앙상블이 되어 한데 모여 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KBS 1TV의 프로그램 ‘다큐공감’에서 ‘엄마와 클라리넷’이란 제목으로 독자와 시청자들의 마음에 익숙해진 연주자들이기도 하다. 발달장애인 최초의 전문 연주그룹으로 공인을 받은 드림위드앙상블이 그 선율을 이 지면에 풀어놓는다. 그 선율은 ‘엄마들’의 언어로 대신 옮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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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금질 10년의 결실이 이루어졌습니다

‘긴가민가’라는 표현을 종종 쓰며 지내왔다. 표준어가 아닌 줄 알고 여태껏 활자로 사용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 국어사전을 펼쳐보니 ‘기연가미연가(其然가未然가)’의 준말이란다. ‘그런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은 모양이나 상황’을 의미한단다. 달리 말해 ‘진짜인가 아닌가’라는 것이다. 난데없이 표준어 운운하는 언급을 왜 꺼내놓는가 하면, 그들의 연주를 바로 곁에서 직접 듣게 됐을 때의 심정이 그랬기 때문이다. 연주하는 모습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도, 떠올린 마음속 물음표는 계속해서 이렇게 되묻고 있었다. 이것이 정말 ‘긴가민가?’

드림위드앙상블은 클라리넷 전문연주자들로 구성된 연주팀이다. 그런데 다른 연주자들의 그룹과 다른 ‘최초’라는 수식어가 여러 가지로 따라붙는다. 이 앙상블이 사회적협동조합이라는 것, 젊은 나이인데도 10년 넘는 연주 경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방점을 찍는 한마디는 이것이다. 장애의 등급으로만 따지는 걸 속편하게 여기는 대한민국의 질서 그대로 표현한다면, 이들 모두가 ‘중증의 발달장애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구성원 대부분이 음대 출신의 전공 연주자들이라는 사실 또한 ‘최초’라고 표현해야 한다.

어떻게 이런 화음이 가능할까? 어떻게 이런 진지한 몰입이 가능한 걸까? 혼자만의 연주라면 얼마든지 인정하겠는데, 개별적인 ‘튀는 행동’이 우선인 게 발달장애의 특성 아닌가. 그런데도 이만큼 서로의 음색을 살피며 하나의 화음을 조화롭게 이루어낸다는 건, 이들이 보통 수준의 노력을 뛰어넘는 치열함의 과정을 거쳤다는 확신을 갖기에 충분했다. 만남의 시간을 가진 뒤 이 글을 정리하는 시점까지도, 지워지지 않고 감탄 하나로 남겨지는 건 연주 연습 내내 몰입하던 그들의 진지한 눈빛이었기 때문이다.

“저희 앙상블의 전신이 있어요. 하트하트오케스트라의 하트클라리넷앙상블 단원으로 함께 연주활동을 했죠. 꾸준한 연습을 하고 거기서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여러 연주회에 앙상블 대표로 나가 많은 활동을 했거든요. 그러다가 정말 클라리넷 연주 하나로 전문성을 키우는 독립을 이루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모아지게 됐어요. 일면 굉장한 모험이기도 했지만, 그게 가능하다는 의견이 굳어지게 됐고 좋은 지도자 선생님도 함께하시겠다는 걸로 결론이 내려지면서, 2015년에 드림위드앙상블이 전문 클라리넷 연주팀으로 탄생하게 된 거예요.”

드림위드앙상블은 사회적협동조합이고, 그 책임을 맡은 이는 조합의 이옥주 이사장이다. 발달장애를 가진 연주인들이 사회적협동조합으로 탄생한다는 건 전례가 없기 때문에 우애곡절도 많았을 텐데, 그 과정이 어땠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대화의 처음부터 곁에 함께하던 여러 ‘엄마들’의 한숨이 일제히 소리 감추듯 흘러나왔다. 대답은 그 한숨의 ‘합창’만으로도 이미 모든 내용을 듣게 된 셈과 다름 아니었다.

간단하게 요약부터 먼저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독립하기로 의견을 모은 뒤에 성남시의 사회적경제창업 공모지원사업에 제안서를 제출했고, 거기에 선정된 뒤 성남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으며 8개월 동안 멘토링 과정을 거쳤단다. 그러는 동안 전문예술법인으로 인가 받으면서 35명의 조합원으로 창립총회를 했고, 문화체육관광부에 신청했던 사회적협동조합 또한 인가가 나와서, 작년 10월부터 우리나라 최초로 발달장애인 전문 연주자들로 구성된 드림위드앙상블이 탄생하게 된 거라 한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 나라에서 인정을 받게 된 거예요. 4대보험에 가입된 근로자로 정식 월급이 나오고 정규직인 연주자가 된 것이죠. 신청한 지 8개월 만에 만들어졌다고 굉장히 빨리 됐다 하는 분들도 계시던데, 8개월 만에 된 건 절대 아니거든요. 10년의 피나는 연습과 담금질 과정을 거쳤기에, 공식적으로 국가 차원의 인정을 받게 된 거니까요. 같은 곡을 천 번이나 반복 연습했다는 거, 그 결실을 결국 저희 애들이 맺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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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기대보다 더 크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TV로 방영된 ‘엄마와 클라리넷’ 방송 이후로 전국의 당사자 부모들, 특히 엄마들의 반응이 정말 뜨거웠던 모양이다. KTX를 타고 단걸음에 달려온 지역의 엄마들, 연주공연을 갈 때마다 면담요청을 하는 현지 관계자들의 진지한 문의처럼, 음악치료 차원의 재활 프로그램이 아님을 증명해 낸 이들의 활동은 국내 차원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발달장애인들의 도전’으로 기록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늘 경험해 왔던 것처럼, 화려함만 존재하는 듯 부각시키는 건 언론의 포장일 뿐이다. 모든 것의 문제는 결국 현실 그 자체가 아니었던가. 이 땅의 제도와 정부 차원의 지원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모든 장애 관련 정책이 그렇듯 용두사미로 끝나거나 스스로 ‘알아서’ 생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게 국가의 복지정책과 문화예술지원책의 민낯임은 분명한 일이다.

“드림위드앙상블이 사회적협동조합이 되고 직업화가 됐다고 하니까, 저희를 아는 대부분의 분들이 이젠 나라에서 월급과 모든 지원금이 다 나오는 줄 알고 계시더라고요. 그건 절대 아니거든요. 자급자족이라고 해야 할까요? 악보를 보자마자 연주가 가능한 애들이 아니기 때문에, 일정한 레슨(개인수업)은 개인적으로 계속 받아야 해요. 그런 레슨비를 자신의 연주 활동 월급으로 벌면서, 자신들의 활동영역을 넓혀가는 거라고 해야겠죠.”

하지만 드림위드앙상블의 등장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게 분명하다. 발달장애인들, 특히 ‘아이보다 하루만 더!’라고 상징되는 엄마들의 가슴엔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는 것만으로도 자녀의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릴 거라는 크나큰 기대감을 남기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음악치료 중심으로 악기 교육을 하던 엄마들의 문의가 빗발친다고 한다.

“하지만 국가의 제도 차원에서는 기대할 게 없다는 걸 먼저 이해하셔야 할 것 같네요. ‘예비사회적기업이 되면 인건비 지원을 2년씩 해준다’ 내지는 ‘사회적기업이 되면 3년 해준다’ 식의 홍보책자 내용은 ‘지원할 돈이 없다’는 관계부처의 한마디로 끝나버리니까요. 사실 저희들도 처음엔 그걸 믿고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까 ‘아, 이런 게 현실과 다른 거구나’ 하는 점만 드러났던 거예요.”

물론 현실이 그렇다 해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게 드림위드앙상블 ‘엄마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모든 게 시행착오라고 생각하며 힘들어하지만, 그건 같은 입장의 모든 부모들, 특히 ‘엄마들’의 똑같은 심정이라는 것이다. ‘내 아이만큼은 이렇게 가르쳐 봐야지’, ‘이런 걸 시키면 좀 발전되는 뭔가 보이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갖다가도 결국엔 주저앉게 되는데, 그건 이 사회의 ‘평균치’와 ‘기대치’에 다다를 방법이 거의 전무한 이 땅의 현실 때문이란다. 그렇기에 ‘나’와 ‘아이’의 현실을 인정하고 직시하는 게 최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라는 걸까? 드림위드앙상블의 ‘이옥주 이사장’이란 명칭보다는 ‘엄마 대표’라는 표현을 쓰고 싶은 까닭은, ‘엄마’라는 한마디가 보다 더 독자의 가슴에 와 닿는 이웃의 ‘1인’으로 느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엄마 대표’의 진솔한 견해가 이 만남의 결론이자 핵심이 되지 않을까 싶어진다.

“우리 (발달장애)애들은 어떻게 하든 일반화가 되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 애들한테 정말 고마운 부분이 있잖아요. 비장애인들보다 더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 말이에요. 분명한 강점이 있어요. 집중력이 있고, 어느 것 하나를 하면 그걸 끝까지 하면서 거짓 없는 결과물을 이끌어내는 끈기가 있잖아요. 그 장점이 무엇인가를 끝까지 찾아서 육성시킨다면, 저희 애들이 하나의 악기로 이런 성취를 이뤘듯이 일반 비장애 아이들보다 훨씬 더 큰 경쟁력을 키울 분야를 이뤄낼 수 있을 거예요. 발달장애는 비장애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둘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그걸 찾아보세요. 어떤 분야든 가장 소중한 보석 하나가 아이의 내면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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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 은성호 엄마

사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이익을 만드는 게 최우선이라고 하죠. 그런데 기술의 발전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전문가들이 계세요. 금전적인 이익보다 가치 있는 건 감동이라는 거죠. 무슨 대회 같은 데 나가서 1등과 2등을 하는 게 음악이 아니라, 정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 코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진짜 음악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감동은 세상 아무나 할 수 없는 거래요. 제가 우리 아이들한테 정말 고마운 건, 우리 아이들이 음악 연주 자체를 즐긴다는 거예요. 그게 성취감이잖아요. 그리고 그런 진지함이 듣는 이들한테 감동으로 전해지는 것이고요. 전문 연주자들이 저희 애들과 함께 무대에서 연주를 한 적이 몇 차례 있었어요. 그런데 그 분들 모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드림위드앙상블과 옆에서 같이 연주하는데, 이건 정말 피땀을 흘린 결과라는 걸 확신으로 느끼게 됐다. 나도 전문 연주자로 살아가지만, 진심으로 감동 받게 됐다.”

이런 연주자들의 미래는 나라에서 살펴줘야 하지 않은가요? 이 애들 자체가 희망이고 성취의 상징이잖아요. 감동이 최고의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거, 세계를 감동시킬 아이들이 우리 곁에 있다는 걸 나라에서 꼭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도 한마디 - 정종현 엄마

발달장애에 자폐도 심한 아이인데, 처음엔 음악을 가르쳐서 뭘 하겠나 하는 심정이었어요. 그런데 학교 음악선생님이 종현이한테 악기를 가르치라고, 종현이는 절대음감이 있으니까 재능이 있다는 거예요. 그 이전에 피아노 추천을 받은 적이 있어서 피아노를 가르치긴 했지만, 고1이 됐을 때 선생님이 자신의 판단으로는 종현이한테 클라리넷이 어울린다며 강하게 권해주셨어요. 종현이가 수영을 10년 넘게 했으니까 폐활량이 아주 좋을 거라는 점을 강조하셨죠. 그래서 시작하게 됐고, 이젠 클라리넷의 전공자가 됐어요.

처음엔 종현이가 악기를 연주하는 걸 집안에서도 별다른 관심이 없었는데, 이 앙상블의 너무 좋은 멤버들을 만나 아이가 바뀌기 시작했죠. 그걸 아빠도 알게 된 거예요. 처음엔 시큰둥했던 아빠가 감동과 함께 적극적인 지원자가 됐고, 두 살 많은 형도 마찬가지로 커다란 마음의 변화를 갖게 됐어요. 동생이 운동이면 운동, 음악이면 음악을 월등하게 잘하는 모습을 보면서, 형이 적극적인 후원자로 바뀌게 된 거죠. 대외적으로 부끄러운 동생이 아니라, 동생의 인생 자체를 보살피며 평생 돕겠다는 관점으로 바뀐 거예요. 저희 가족은 정말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할 수 있는 구성원으로 탈바꿈이 됐거든요. 종현이가 클라리넷 전문가가 된 선물이 바로 우리 가족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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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하나 - ‘장애’라는 거, 하지만 가장 감동적인

- ‘엄마들’이 남긴 대화

“가족들이 자존감을 되찾고 회복했다는 것만큼 값진 건 없어요.”

“자존감이 회복된 증거를 하나 말씀드릴까요? 이번 봄에 종현이 형하고 성엽이 형이 결혼을 해요. 그 형들의 결혼식에 동생들의 앙상블이 가서 축가를 연주하기로 했어요. 장애가 있는 동생들을 가리고 감추는 게 아니라, 자랑스러운 연주인으로 드러내고 공개를 하겠다는 것이죠.”

“가족 차원에서 공개하는 거예요. 우리 작은 아들이 장애가 있지만, 이렇게 멋진 연주자라는 걸 세상을 향해 드러내는 거예요.”

“정말 멋지고 감동적인 장면 아니에요? 아예 당당하게 오픈하는 거잖아요. 사돈어른과 모든 친지들이 다 모이는 자리인데, 장애가 있는 동생이 앙상블로 축가 연주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인식이 달라진 인생이 됐다는 증거잖아요.”

“사돈어른 되실 분들이 너무도 흔쾌히 오케이를 해주셔서, 오히려 저희가 감동을 받았거든요.”

“장애가 누구의 잘못은 아니잖아요. 이렇게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또 장점을 활용해서 전문연주자로 직업인이 됐고, 이 앙상블이 많은 후배와 어린 동생들에게 힘과 희망을 안겨주고 있잖아요. 더 열심히 해서 이 능력을 더 널리 알리고, 정말로 장애인식개선에 가장 앞서는 선두주자가 될 거예요. 저희를 위해서, 모두를 위해서 말이에요.”

 

마무리 둘 - 반드시 실현될 미래라는 것

연습실 벽에 눈에 띄는 두 개의 액자가 걸려 있었다. 무슨 내용인가 다가가 보니,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로 가자!”는 내용의 글씨였다. 유명 캘리그래퍼의 작품이라는데, 보는 순간 입 안에 한마디가 맴돌았다. ‘그래, 곧 실현될 거다. 드림위드앙상블, 카네기로 가라!’

 

마무리 셋 - 지키기로 한 약속

연주자인 김우진 씨는 <함께걸음>에서 취재를 나온다니까, 자신이 반드시 인터뷰를 하고 책에 나와야 한다며 며칠 전부터 인터뷰할 내용을 꼼꼼하게 정리했다고 한다. 인터뷰를 하고 싶은 내용은 클라리넷이 아니라 교통정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었고, 관련 정부부처에서 당장 스카우트를 해도 될 만큼의 내용이었다. 책에 꼭 나와야 한다고 해서, 알겠다고 약속하고 몇 차례나 다짐을 반복해서 전했다. 그 약속을 지킨다.

 글․사진 채지민 객원기자